저자소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작가프로필 보기) -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로서 마르케스보다 더 인기 있는, 혹은 책이 많이 팔린 현존 작가는 드물다.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와 함께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손꼽힌다.
그의 소설에는 현실과 환상, 역사와 설화, 객관과 주관이 황당할 정도로 뒤섞여 나온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현실을 보다 날카롭고 깊이있게 드러내 주는 것이 마르케스 문학의 마력이다. 지은 책으로 <백년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납치일기> 등이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emburg) - 1870년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어릴적 병을 앓아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다. 10대에 이미 사회주의 운동에 연관을 맺고 있었던 그녀는 1889년 차르 경찰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 노동당인 폴란드 사회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위장결혼으로 독일 시민권을 얻어 독일 사회민주당에 들어갔다.
카우츠키, 베벨 등 쟁쟁한 사회주의자들과 교유하며 지지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녀는 1904년 빌헬름 2세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처음 수감되었다. 그후로 수없이 감옥을 드나들며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 1918년 11월 석방된 로자는 12월 독일 공산당 설립총회에서 마지막 연설을 했으나, 우익 군인들에게 살해되어 1919년 1월 운하에 떠오른 시체로 발견되었다.
지은 책에 <자본 축적론>,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러시아 혁명> 등이 있다.
마르코스 -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부사령관. 검은 스키마스크와 별 세개가 박힌 낡은 군모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운다. 나이도, 얼굴도 알리지 않고 있는 그는 신 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지적인 반란가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그는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 그리고 마르케스의 작품을 통하여 세상에 눈을 떴으며, 12살에 선물 받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다음엔 <햄릿>과 <맥베스>로 정치를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1984년 치아파스의 라칸도나 정글에 도착하여 게릴라가 된 후, 초칠 족과 첼탈 족 원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로 성명서, 연설문, 편지, 에세이, 이야기책을 발표하거나 썼으며, 다채로운 스페인어 문체와 기지가 넘치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무장 봉기 이후에는 언어를 무기로,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라칸도나 정글을 사회적 연대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마하트마 K.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 1869년 10월 2일 서부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18세 때 런던에 법률을 배우고, 1891년 귀국하여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893년의 남아프리카 여행에서 백인에게 박해받던 인도인들을 보고 1915년 귀국할 때까지 인도인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이후 아힘사(불살생), 무소유, 무집착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바탕 위에 사챠그라하(satyagraha, 진리 파지) 운동, 아슈람 공동체 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영국에 대한 비협력 운동의 일환으로 납세 거부 · 취업 거부 · 상품 불매 등을 통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지도했다. 인도 카스트의 최하층인 하리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진력하였다.
1947년 7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간의 융화를 위해 활동하던 중 1948년 1월 반이슬람 극우파의 한 청년이 쏜 흉탄에 쓰러졌다. 1922년 12월 인도의 문호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라고 칭송 한 시를 받은 뒤로 '마하트마 간디'라 불려온 그는 인도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속에 위대한 영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리엘 도르프만 (Ariel Dorfman) - 칠레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문학평론가로 1942년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칠레에 정착하여 싼띠아고의 칠레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삐노체뜨의 쿠테타로 말미암아 망명했고 현재는 미국 듀크대학 교수로 있으며 창작활동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문학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폭넓은 글쓰기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특히 아동 문학에 관심이 많아 <제국의 낡은 옷>(1983)과 <미래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대표작으로는 <과부들>, <마누엘 센데로의 마지막 노래>, <마스카라>, <우리 집에 불났어>(단편 소설집)와 시집인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가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1918년 까프까즈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돈 지방의 로스또프 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대학 문학부에서 통신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중 스딸린을 비판한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서 8년을 보낸 후 1956년에 석방되었다. 그 후 라잔에 정착하여 수학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 <수용소 군도>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1974년 2월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당했다. 1976년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버몬트 주의 캐번디 시에 살면서 <붉은 수레바퀴>의 세 번째 매듭 <117년 3월>을 집필, 1993년에 발표, 1994년 5월, 2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국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 <제1권>, <암병동>, <수용소군도>, <붉은 수레바퀴> 등이 있다.
엘리 위젤 (Elie Wiesel) - 홀로코스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문학적 표현으로 평가받는 소설 『밤(Night)』의 저자이며, 인류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과 증오에 저항하는 휴머니스트이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 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어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잃었고, 그 뒤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진 뒤 아버지를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중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8년에 발표된 <밤>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연이어 유대인 박해를 고발하는 소설들을 발표했다. 뉴욕 시티칼리지를 거쳐 보스턴 대학교의 교수직을 맡고부터는 더욱 폭넓은 사회활동을 전개하여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등 기아와 박해의 현장을 찾아 구호활동을 벌였으며, 핵전쟁 방지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1984년에 프랑스 문학대상을,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바다는 결코 넘치지 않는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른다>, <밤>, <예루살렘의 거지>, <서약>, <증언> 등이 있다.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 1926년 8월 13일, 옛 오리엔테 지방의 바란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후 산티아고 데 쿠바와 아바나에 있는 사립 예수회 학교와 아바나 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그는 정치부패반대 학생모임에 참여했으며, 1947년에 쿠바인민당에 가입하고 후에 좌익지도자가 되었다. 같은 해 트루힐료 독재타도를 위한 도미니카 군사원정에 자원했다. 학생지도자로서 카스트로는 콜롬비아에서 라틴 아메리카 반제국주의 학생의회 설립을 돕고, 보고타에서 일어난 1948년의 민중봉기에 참여했다.
1952년 바티스타의 쿠테타 이후 무장 반란을 위한 혁명기구를 조직, 산티아고데 쿠바에서 몬카다 병영 공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이 일로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함께 투쟁한 60명 이상의 동료 혁명가들을 잃었다.
그는 감옥에서 '역사가 나를 용서하리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저술하여, 7월 26일 혁명운동의 강령으로 사용하였다. 여론의 압박으로 석방된 후 쿠바 원정 게릴라 부대를 새로 창설하고 멕스코로 진격했다.
1956년 12월 2일 쿠바 해안에 상륙한 후 라울,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후안 알메이다, 헤수스 몬타네 등 81명의 전사들과 함께 반군활동을 전개했다. 1959년 바티스타가 쿠바를 탈출한 뒤 카스트로는 쿠바 반군 최고사령관의 자격으로 아바나에 입성, 그해 2월 13일 수상에 지명되어 1976년까지 재직했다. 현재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