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7차 교육 과정에 따른 18종의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한국 소설 중에서 단편만을 뽑아 수록했다. 한국 근 ? 현대 문학사의 흐름을 좇아 2권에는 채만식, 이효석, 이상, 김유정의 단편을 실었다. 각 작품은 발표 연대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최대한 원문을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현행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적용하여 교과서 속의 한국 단편문학을 청소년들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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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 1902 ~1950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며, 1902년 전북 임피에서 출생하였다.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했고, 1924 단편「세 길로」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실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품으로는「잘난 사람들」「탁류」「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냉동어」「맹순사」「미스터 방」「논 이야기」,「민족의 죄인」「낙조」「처자」「금의 정열」등이 있다.「당랑의 전설」「심 봉사」「가죽버선」「돼지」등 희곡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기법으로 형상화하여 현실 인식과 역사의식을 담아내는 특징을 보여준다.
김유정 : 1929년 휘문고보 졸업. 1930년 연희전문 문과 중퇴. 1932년 고향으로 가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우고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힘씀. 1933년 폐결핵 발병.
단편 『산골 나그네』『총각과 맹꽁이』 발표.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낙비』 당선. 이후 투병생활을 하며 창작에 전념. 구인회 활동. 1937년 폐결핵 악화로 사망. 1938년 단편집 『동백꽃』(삼문사) 간행.
『만무방』『봄·봄』『동백꽃』『땡볕』 등 30여 편의 뛰어난 단편소설들을 남김. 199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단편선 『동백꽃』간행.
이상 : 1910년 9월 23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이며 만 2세가 되던 해부터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23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의 심리적 갈등은 그의 문학에 나타나는 불안의식의 뿌리를 이루게 된다. 신명학교, 보성고보를 거쳐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졸업하던 해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가 되었으며, 조선건축회지인 ‘조선과 건축’ 표지도안 현상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는 등 그림과 도안에 재능을 보였다. 1933년 각혈로 퇴직한 후 황해도 배천온천에서 요양하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금홍을 만났다. 그뒤 다방 ‘제비’, 카페‘쓰루’, 다방 ‘69’ 등을 경영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1934년 김기림 · 이태준 · 박태원 등과 구인회에 가입했으며,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했다. 그해 6월 변동림과 결혼한 뒤, 10월에 도쿄로 건너갔으나 이듬해 2월 불령선인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 감금되었다. 이로 인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1937년 4월 17일 도쿄 제국 대학 부속병원에서 만 26년 7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효석 : 소설가. 호는 가산. 사숙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3년 평창 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이듬해 경성 제대 법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 해 동대학의 조선인 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동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하고 '매일 신보'에 시와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 '조선 지광'에 『기우』,『행진곡』등을 발표하고 이듬해 동교를 졸업, 1931년 잠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경성 농업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경성 시절을 통해 실의에 잠기기는 했으나 이 무렵부터 세상일과 인연을 단절, 본격적인 작품 생활에 전념하여 한때의 동반 작가라는 것을 청산했다. 이 해 '구인회'에 참여했고, 이 무렵『돈』,『수탉』등 향토를 무대로 한 일련의 작품을 내놓았다.
1934년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 1936년『분녀』를 발표하여 그 특유의 성 모럴을 제시하고 『산』,『들』과 같은 작품에서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 해 한국 현대 단편 소설의 대표작의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조광'에 발표하였다.
1934년을 전후하여 작품 경향이 변모, 소설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개살구』『낙엽기』, 1938년 『장미 병들다』등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발표, 초기의 향토적이니 소설과는 달이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평소 매스필드나 체호프,입센,토마스 만을 섭렵하면서 문학관의 정립을 추구했다. 『화분』같은 작품에 짙게 반영되어 있는 또 하나의 특질인 자연적인 상태의 성적 개방은 인간성에의 회귀를 의미하는데, 유교적인 상태에 유폐된 한국 소설의 차원을 넘어선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장편에 『화분』『벽공 무한』『창공』등이 있으나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탁월한 세계를 제시, 다나편 자가가로서 뚜렷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했다. 1942년 『봄의상』『풀잎』『일요일』등의 단편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5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향리인 진부에 안장되었다.
작품에는 상기 외에 『하루빈』『약령기』『일기』『노령근해』『상륙』『북국통신』『오리온과 능금』『가을과 서정』『성수부』『성화』『북국춘신』『사냥』『석류』『천사와 산문시』『독백』『시월에 피는 능금꽃』『성찬』『마음에 남는 풍경』『삽화』『계절』『인간 산문』『가을과 사냥』『해바라기』『거리의 목가』『막』『소라』『부록』『공상 구락부』『향수』『산정』『일표의 공능』『황제』『여수』『은은한 빛』『창공』『소복과 청자』『산협』『라오 고원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