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아씨
"벌통과 텐트가 있던 자리가 허전하다. 그곳에 산책을 나갔다. 아직 오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땀 냄새와 꿀 냄새로 범벅이고, 주인을
못 따라 간 벌들이 윙윙거린다. 오빠가 앉아서 고독을 씹던 돌멩이 밑으로 꼬깃꼬깃한 쪽지가 발견된다.
'오빠 안 보고 싶었나보다. 그림 그려주고 싶었는데. 아무튼 건강하고 어여쁜 숙녀가 되어라…….'
그 후로 오빠는 다시 오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서로가 어색했는지, 편지조차 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아카시아 꽃이 필 때마다, 환영처럼 동네 어귀에는 아직도 꿀뜨는 내로 진동을 한다. 그때 그 꿀벌들이 찾아와 꿀을 빠는지…….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오빠와 슬픈 얼굴과 달콤한 꿀과 소란한 벌들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온 산하가 하얀 아카시아 꽃으로 흐뭇이 뒤덮이는 지금, 오빠도 어느 하늘 아래선가 아카시아 꿀을 따느라 정신이 없겠다.
오늘따라 그 아카시아 꿀이 미치게 먹고 싶다.
-「꿀 따는 오빠」중에서
군사우편 찍힌 내 편지였다. 이미 뭉텅이 편지들은 활활 타들어 갔고, 그동안 나 몰래 모아온 편지를 발칵 들켜버린 엄마는
''니가 지금 남자랑 편지질 할 나이니?''하고 큰소리치면서도 미안한지 숭글숭글 웃는다.
그 날 난 엄마와 된통 싸우고 속이 상해 엉엉 울었다.
다시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또 보냈다. 그러나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부대 주소가 바뀐 것인지, 제대를 한 것인지, 아무 소식이
없다.
제대하면 손잡고 걸어보자는 약속도, 바다에 가보자는 약속도, 카페에 데려 가겠다던 약속도, 다 거짓말이 되었다.
까마득한 세월이 흐르고 흐른 지금, 그의 편지는 여전히 내 가슴속 창고에 고이고이 간직되어 있다.
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서 '이근우'라는 사람이 나오면 혹, 그가 아닐까 하고 생긋해진다.
-「군사우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