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밝힌 책이다. '징비(懲毖)'란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했던 유성룡은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가감 없이 기록해 놓았다.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 기록문학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고 그 만큼 징비록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번역본은 징비록 상하 두 권과 '녹후잡기'로 이루어진 판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저자소개
"1542년, 즉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살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25세 되던 1566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임진왜란 발발시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던 그는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하였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扈從)하였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해서는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서울 수복 후, 다시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의 제조를 맡아 군비를 인재를 배양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조용히 저술에 몰두하였는데, 그 후 복관되어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일체 응하지 않았으며,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서애집』, 『영모록』, 『징비록』을 남겼다."